젊은이들의 축제 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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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무대 위 여러 밴드를 보며 저들은 정말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무진장 했기 때문에 저기에 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지켜 냈구나. 집을 지었구나. 거기서 잘 살고 있구나. 집을 가꾸고 청소하고 누리고 쉬어가고 일구며. 친구를 초대하거나 초대하지 않거나 하며. 침대를 거실에 떡 하니 두고 누가 혹시 올지도 모를걸 대비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적당히 시간내서 치우고 몸을 돌보고 스트레칭하고 햇빛받는 식물을 보고. 정확하게가 아니라 어느정도 됐을때 물주기. 그래도 잘 자라더라 식물은. 적어도 내가 키우는 식물은. 더 거칠고 건강하게 자라기.  내가 굳이 상상하며 걱정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내가 스스로 잘 살아내니까 괜찮다. 땡땡이는 낯을 안가린다. 나를 좋아해준다. 땅땅이도 마찬가지야. 나도 그들을 좋아한다. 송송이가 나를 안아줬다. 그때는 무얼 신경쓰느라 거기에 고마워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땅땅이에게 사진을 받고 안았던 걸 떠올렸다. 송송이는 오래된 밴드를 보고서 함께 위로받은 우리를 연결했다. 안아줌으로써. 이렇게 계속 느슨하게 잘 엉켜있고싶다. "귀여운 사람들아, 왜 울고있니. 안녕. 귀여운 친구야" 김창완 밴드의 노래 진행은 편지글 같았다. (-여기 내가 있잖아 -여름밤에 우리가 모였어 -왜 울고 있니 -휘파람을 불어주고 길이 되어줄게 -밤이 깊었네 -아리랑) 이 편지글을 친구들과 함께  했다. 위로를 받다가 뒤쪽에 모여있는 작은 원 친구들을 만났다. 시골 소년 소녀들 같은. 산울림을 잘 아는, 산울림의 진심을 알아차리는 친구들 같았다.  실컷 원형을 만들어 놀았다. 마음같아서는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딧불이처럼 보내줬다. 얼핏  들은 이름으로는 거북이 마음인가 거북이 마을인가 하는 모임의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이었는데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우리 중 한 친구가 내 등을 치고 나는 또 다른 친구의 등...

취미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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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서를 한다. 통화를 하며 볼펜으로 종이에 이상한 그림과 문자를 끄적거리거나 강의를 들으며 알기 쉽게 나만의 그림 표식을 남긴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회화 전공이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나를 언제나 설명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낙서 같은 그림을 좋아한다고 꼭 덧붙인다.     한때 창의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아이들한테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적이 있다. 이다음에 더 잘 그리는 스킬은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떡하지? 그런 걱정에 시달리다가도 어린 친구가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 하고 싶어 하는 바를 잘 들어주고, 하고 있는 것을 응원해 주며 함께 동료로서 연구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는 ‘놀이’를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과정 중에 확신은 없지만 대신에 정답이 없었고, 친구들마다 속도가 제각 기라 진도 또한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이렇게 해도 되나? 저렇게 해볼까? 이게 안되면 이렇게 하면 되지’와 같은 생각으로 즐거운 미술 놀이를 했다. 중학생이지만 이해가 느리고 그림 실력이 저조하다고 처음 소개받았던 친구의 그림은 자신만의 그림체와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아 외국 동화의 삽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와 상상력, 거침없는 말랑함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그림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내게는 멋진 그림이었다. 너무 탐이 나는 바람에 아이의 그림을 두고 전시장에서 좋은 그림을 봤을 때처럼 눈으로 공부하듯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 번은 아트페어에 갔다가 수많은 그림 사이에서 지쳐갈 때쯤 어떤 외국 초등학생 작가의 그림을 봤다. 낙서와 이야기, 거침없는 선과 색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예술에서 기술보다는 그들의 자유롭고 천진난만하고 깊이 사색적인 본체를 아낀다. 알맹이의 묘연한 빛이라고 해야 될까. 아마 내가 추구하는 예술도 그런 것일 것이다.   낙서는 그림일까? 그림은 그린다고 표현하지만, 낙서는 ‘한다’고 표현한다. 취미와...

알람은 언제 초보 딱지를 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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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다 아빠처럼 된다 너 ” 늦게까지 잠에서 ,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말 한마디를 꿈처럼 남기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정말 꿈이었을까 . 여러 꿈을 겹치고 기억하려 애쓴다 .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나 물이 틀어지고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 방문이 열리고 익숙한 그림자가 나를 바라본다 . 아빠는 똑같은 시간에 나를 깨우며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살아있었다 .   어쨌거나 아빠가 내게 해줬던 말들 중 가장 그럴 법한 얘기였다 . 내가 늘어질 때 , 멍때릴 때 , 꿈만 꾸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마다 예언 같은 메아리를 떠올렸다 .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 그 대사를 또 떠올린 것에 괴로워하며 여느 때와 같이 그 아빠의 그 딸 노릇을 하고 있었다 .   역시 오늘도 줄줄이 누운 우리를 깨운다 . 그의 아침은 잠들기 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 가장 이른 사람을 깨우기 위해 그는 대기조로 잠이 든다 . 그는 한때 , 혹은 가끔 그가 연기하던 깔끔한 모습으로 관리되는데 그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기도 , 자신의 성찰로 인한 노력이기도 하다 . 여기서 연기란 배우의 연기를 뜻한다 .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외적인 관리가 필수적인 사람이다 . 하지만 정작 그는 내적 수양 중인 건지 보통의 날들에 대해선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었다 . 어떨땐 자신이 받들고 있어야될 피붙이들에게도 .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는 걸까 . 어디까지 귀찮은 걸까 . 어디까지가 과한 걸까 . 가끔 이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막상 내가 더 자주 이불 더미에 올라 별일을 안 하고 누워만 있다 보니 , 오히려 그가 마치 반복적으로 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