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은 언제 초보 딱지를 뗐을까?

 



그러다 아빠처럼 된다 늦게까지 잠에서,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한마디를 꿈처럼 남기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말 꿈이었을까. 여러 꿈을 겹치고 기억하려 애쓴다.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나 물이 틀어지고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이 열리고 익숙한 그림자가 나를 바라본다. 아빠는 똑같은 시간에 나를 깨우며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살아있었다. 

어쨌거나 아빠가 내게 해줬던 말들 가장 그럴 법한 얘기였다. 내가 늘어질 , 멍때릴 , 꿈만 꾸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마다 예언 같은 메아리를 떠올렸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대사를 떠올린 것에 괴로워하며 여느 때와 같이 아빠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역시 오늘도 줄줄이 누운 우리를 깨운다. 그의 아침은 잠들기 전부터 시작된다고 있는데, 가장 이른 사람을 깨우기 위해 그는 대기조로 잠이 든다. 그는 한때, 혹은 가끔 그가 연기하던 깔끔한 모습으로 관리되는데 그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기도, 자신의 성찰로 인한 노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연기란 배우의 연기를 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외적인 관리가 필수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내적 수양 중인 건지 보통의 날들에 대해선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었다. 어떨땐 자신이 받들고 있어야될 피붙이들에게도.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귀찮은 걸까. 어디까지가 과한 걸까. 가끔 이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막상 내가 자주 이불 더미에 올라 별일을 하고 누워만 있다 보니, 오히려 그가 마치 반복적으로 성실한 채플린이라도 되는 같았다. 


어떨 나보다 나았다. 이건 반칙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그와 같은 머리카락을 자라나게 하고서 갑자기 그가 완전히 다른 유전자의 노란 가발을 머리에 올렸다. 덕분에 나는 그의 애매하게 구불거리는 반곱슬머리를 달고 태어나 그의 무능력함을 타고났다. 그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삶보다 나은 것들을 가져다주길 바랐지만 은연중에는 그와 내가 경쟁이라도 하는 , 그의 발전을 경계했다. 내가 그보다 먼저 올라서길 바랐다. 매일 그와 나의 검은색 뿌리를 방바닥에서 치우며 결국엔 우리가 같은 한계치를 가지고 있단 확인하긴 싫었다. 구분조차 어려운 체모를 바퀴벌레보다 자주 발견했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손끝으로 집어 올린다. 그의 쉬운 감정들을 증오했지만 내가 울거나 짜증을 부릴 때는 그것들이 넘치는 것이 어쩔 없었음을, 감정이 우리의 전부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매일 아침 늦어도 8시면 일어났고, 시답지 않은 운동을 매일 했고 세일에 맞춰 장을 봐왔으며 반찬 없는 요리를 했고 매일 술을 병씩 마셨다. 그러다 가끔 설거지와 빨래를, 청소를, 어쩌다 대본 연습을 했다. 그녀와 싸우는 일엔 힘이 다했는지 이제는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그녀를 모시고 산다. 그는 그녀의 보조인이다. 가끔 평소 자신과 다른 계급과 직업의 옷을 입고 어색하게 연기를 하노라면 그는 마치 이야기의 흐름을 보자면 있어서는 생략 파트 하나인 같았다. 사람이 저기 TV 화면 속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때면 나는 기대에 가득 화면과 우리를 번갈아 보는 그에게 말했다. “평소처럼 굴어얼어서, 배가 나와서, 얼굴이 부어서, 말투가 가짜여서, 모든 연기 톤이라 이상하다고. 말을 들어버린 그는 다음 촬영장에서 굳어져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골목길에서 머리를 어떤 군사 역할 연기자를 모른체하고 지나갔던 일이 기억난다. 내가 아직 그를 닮기 , 그녀의 자식으로서 책가방을 맺을 그는 친구와 무심히 지나가는 나를 보고 지금과 똑같이 굳어 있었다. 발은 분명 걷고 있었지만. 그를 길목에서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를 지나쳐 집으로 가는 동안 나의 시간은 꿈속에서와 같이 늘어지고 있었다. 그의 시간은 이후로 어딘가에 멈춰있다. 적어도 나를 깨울 그의 몸은 걷고 있지만 실루엣은 초보 연기자처럼 굳어 있었다. 


차라리 일상과 다른 말투를 쓰는 사극을 해서 목소리를 긁으면, 수염을 붙이고 어느 장군의 옷을 빌려 입으면, 연기는 조금 나았다. 그는 이순신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많은 수의 군사들과 함께 바닷가의 진흙을 견뎠고, 내복과 허예진 입술로 추위를 보람차게 보냈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달라진 건가? 이야기는 점차 속도를 가하고 주인공은 점점 밖에서도 주인공으로 성장할 있는 걸까. 사극은 한때 유행한다. 밀물이 있듯 썰물의 때가 있다. 수염을 붙이면 많은 사람이 비슷해졌다. 그는 다시 의사 가운을 입고 잠깐 등장해 주인공의 이야기에 진단을 한다든지, 회사의 높은 임원이 되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보냈다. 알람이 울리면 그는 촬영장에서 산책하다가 카메라 앞에서 잠깐 얼어버린다. 화면에는 얼음을 모습이 아주 가끔씩 보물찾기하듯 나온다. 달력에 빨간색의 동그라미가 하나둘 줄어든다. 화면의 그를 이상 찾아보지 않는다. 4개월, 6개월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다양한 양복과 넥타이는 장롱에서 잠을 잔다. 줄줄이 걸린 그들을 깨우러 장롱문을 반쯤 연다. 휘어진 허리의 그가 가만히 서있는다. 똑같은 시간이 됐는데도, 알람이 울리는데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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