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미학
낙서를 한다. 통화를 하며 볼펜으로 종이에 이상한 그림과 문자를 끄적거리거나 강의를 들으며 알기 쉽게 나만의 그림 표식을 남긴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회화 전공이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나를 언제나 설명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낙서 같은 그림을 좋아한다고 꼭 덧붙인다.
한때 창의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아이들한테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적이 있다. 이다음에 더 잘 그리는 스킬은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떡하지? 그런 걱정에 시달리다가도 어린 친구가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 하고 싶어 하는 바를 잘 들어주고, 하고 있는 것을 응원해 주며 함께 동료로서 연구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는 ‘놀이’를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과정 중에 확신은 없지만 대신에 정답이 없었고, 친구들마다 속도가 제각 기라 진도 또한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이렇게 해도 되나? 저렇게 해볼까? 이게 안되면 이렇게 하면 되지’와 같은 생각으로 즐거운 미술 놀이를 했다. 중학생이지만 이해가 느리고 그림 실력이 저조하다고 처음 소개받았던 친구의 그림은 자신만의 그림체와 규칙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아 외국 동화의 삽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와 상상력, 거침없는 말랑함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그림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내게는 멋진 그림이었다. 너무 탐이 나는 바람에 아이의 그림을 두고 전시장에서 좋은 그림을 봤을 때처럼 눈으로 공부하듯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 번은 아트페어에 갔다가 수많은 그림 사이에서 지쳐갈 때쯤 어떤 외국 초등학생 작가의 그림을 봤다. 낙서와 이야기, 거침없는 선과 색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예술에서 기술보다는 그들의 자유롭고 천진난만하고 깊이 사색적인 본체를 아낀다. 알맹이의 묘연한 빛이라고 해야 될까. 아마 내가 추구하는 예술도 그런 것일 것이다.
낙서는 그림일까? 그림은 그린다고 표현하지만, 낙서는 ‘한다’고 표현한다. 취미와 특기를 비슷한 관점에서 보자면, 취미 뒤에는 ‘생활’이라는 말이 붙지만 특기 생활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취미는 그냥 하는 것이다. 하고 싶으니까 하고, 어쩌다 보니 엉덩이가 무겁도록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인지 나는 특기보다는 취미가 많다. 취미같이 좋아하는 것들을 특기로 발전시켜 보려고 아직 전전긍긍하는 중이나 이 또한 다행인 건지, 아직 낙서를 포함한 취미들을 놀이와 생활로 즐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이것들을 특기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일단 머리로는 정리가 됐는데, 그건 바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지속함으로써 잘하는 것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말과 머릿속에서 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겪어보면서 더 알아가고 수정해야 되는 부분인데 단지 나의 바람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불안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좋아했으면 한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잘하게 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마음 말이다. 어떤 곳에 갇히거나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놀이와 자유로움,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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